제목 쓰레빠, 민소매, 그리고 피아노를 사랑하는 청년
작성자 guest201
작성일자 2013-06-24
조회수 3232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하루하루는 너무 긴 데, 한달, 1년은 너무 짧다는 말이 생각나는 날이네요.
날씨가 더워지면서 아~ 이 해가 언제나 저무려나...하늘을 올려다 보노라면 하루가 참으로 깁니다. 그런데 벌써 6월 말이라니요. 2월 22일에 북촌 한옥마을, 가회동 201번지에 오롯이 자리를 잡은 이 소박한 집에 첫 손님을 받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넉 달이 후~울쩍 지나갔습니다. 정말 세월은 빨라도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한 분, 한 분, 한 가족, 한 가족.. 그 모든 손님들의 얼굴이 이렇게 생생이 기억나는데 말입니다.
 
참참참,,,,,,
 
오랜 만에 글을 쓴다.......................... 생각하다 또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게스트하우스 201> 앞집에 관한, 또 반전(反轉)의 놀라움을 안겨준 앞 집 총각에 관한 것입니다.
 
오셨던 분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게스트하우스 201>은 가회동 main 길가에서 좁은 골목길로 3미터만 들어오면 있습니다. 그 골목이 오종종하니 예쁘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지요.
 
골목 안에는 총 4개의 문패가 있습니다. 골목 첫번째 건물 2층에 있는 <예원 피아노>. 그 건너편이 디자이너 선생님의 작은 사무실이구요, 정면에 보이는 집에 저희 옆집.(저와 아주 친한 이웃입니다.) 그리고 골목 맨 안쪽집이 저희 한옥집입니다.
 
즉 이렇게 생긴 저희집 작은 골목으로 들어오시다 보면 이와 같은 제 이웃들을 거쳐오시는 겁니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녹색을 좋아하는 201 쥔장. 화초가꾸는 건 잼병이면서 화초 모으는 것은 취미죠. 저와 똑 같은 사람이 저희 옆집 이웃이구요. 그래서 둘은 열심히 화초를 사다놓고 자연방목으로 합동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그냥 내버려뒀을 뿐인데 골목 안 작은 정원이 나름 봐줄만 합니다. 이 골목이 예쁘다며 불쑥불쑥 저희집으로 들어오는 관광객이 꽤 되니 말입니다.

 

아무튼...

 

그런데 언제부턴가(1달 전 부턴가...)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혹은 편의점에 주전부리를 사러 나갈 때마다 <예원 피아노>에서 너무도 멋진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 이렇게 낭만적인 풍경이라니.. 작고 소담스런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바하의 경쾌하면도 장중한 연주 소리.. 그것도 야심한 밤에만 들려오는 연주라니.. 원래 동네 피아노학원에는 초등학생들만 오는거 아니던가요? 이 정체모를 연주는 누가 하는 걸까요?

 

매일 밤,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온 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그날 이후 일부러 밤마다 대문 앞에 나가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예전에 <비포 선라이즈>란 영화를 보면... 두 젊은 청춘이.. 동이 틀 새벽 무렵, 누군가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연주 소리를 숨죽이고 듣던 풍경이 자연스레 오버랩 되면서 말이죠.

 

노오란 전등이 따스히 비추는 골목 안. 밤하늘에 떠있는 둥그런 달을 보며 누군지 알길 없는 이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누구라도 세상이 참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호기심 왕성한 201 쥔장. 또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피아노 학원 원장선생님이 못다 이룬 젊은 날의 꿈을 피아노 연주로 다독이고 계신가...

독주회를 준비하는 아름다운 젊은 피아니스트가 밤에만 연습실로 사용하나...

아님... 가느다란 흰 손을 지닌 창백한 얼굴의 멋진 훈남 피아니스튼가....

 

그렇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휘엉청 밝은 달빛 아래 서서 피아노 연주를 듣기 시작한 것이 말입니다.

 

그러다 지난 주...

 

쓰레기를 버리려고 늦은 밤에 대문 밖을 나섰다가..

수상스런 남자 하나가 피아노 학원 문을 열려고 하는 의심스러운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피아노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비주얼과 복장을 갖춘 젊은 사내. 우락부락한 얼굴로 그 야심한 밤에 피아노 학원으로 들어갈 일은 죽어다 깨어나도 없어보이는 사람이었으니.. 오지랖 넓은 201 쥔장은 의심어린 눈초리로 째려볼 수 밖에 없었지요.

 

마당에 손님들이 쭉 앉아겠셨기 때문에 용기를 낸 저는 그 남자에게 묻습니다.

 

"저... 무슨 일로....?"

 

벙찐 얼굴의 청년, 저를 멍하니 쳐다봅니다.

그 순간 남자의 손에 들린 황금빛 열쇠를 발견하는 201 쥔장. 그리고 퍼뜩 스쳐가는 한밤의 피아노 연주소리...

 

아~ 저 우락부락한 청년이? 정말? 질질 끌며 신고 온 쓰레빠(!)나 소매없는 현란한 민소매 티셔츠의 포스로 보아 <북경반점>이란 이름이 쓰인 오토바이를 광속으로 몰아주어야 할 이미진데...? 설........................마.........?

 

"혹시 밤마다 피아노 연주하시는 분이세요?"

 

급 화색이 도는 청년의 얼굴.

 

"네.. 전데요.. 연주 들으셨어요?"

 

급 황망해진 201 쥔장의 얼굴

 

"아~.... 연주회 준비하시나봐요?"

 

"네? 아뇨.. 대학갈려구요..."

 

왕, , 왕..

 

그날 이후에도 201 쥔장은 밤마다 늙은 청년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알게되었지요.

현란한고 장중한 그 피아노 연주의 레퍼토리는 단 2개라는 것.(음대 입시에는 그리 많은 레퍼토리를 요구하지 않는가 봅니다).. 그리고 간간히 삑사리가 건반음 사이로 삐집고 나온다는 것을 말이죠.

 

비록 그 아름다운 선율의 주인공이 긴 손가락을 지닌 창백한 얼굴의 젊은 백건우가 아니란 것을 알아버렸지만 저는 여전히 골목을 서성이며 그의 연주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연주가 끝난 후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쓰레빠를 질질 끌고 사라져 가는 그 젊은 연주가도 사랑스럽지 말입니다.

오래만에 저에게 반전의 유머를 선사해준 쓰레빠와 민소매와... 그리고 피아노를 사랑하는 청년.

 

내년에는 꺽 음대 대학생이 되시기를...

 

휘엉청 달 밝은 밤에 201 쥔장은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