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첫경험
작성자 guest201
작성일자 2013-04-30
조회수 3127
2013년 4월 30일 화요일
 
1992년 12월. 저는 태어나서 난생 처음 해외로 가는 비행기 안에 흥분된 상태로 앉아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Swiss Airline의 빨간색 마크와
 "Fish or beef?"
라고 묻던 스튜어디스 언니들의 친절한 웃음을 말이지요.
 
그리고 홍콩 공항에 발을 딛었습니다.
'아~ 드디어 홍콩에 도착했다. 너무 기뻐 땅에 무릎 꿇고 키스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다.'
지금 생각하면 오글거리지만 20살, 청춘이었던 저는 그날 일기장에 이와 비슷한 문구를 써 넣은 것도  같습니다.
 
어제.. 20살의 제 첫 배낭여행을 기억나게 한 친구들이 게스트하우스 201에 다녀갔습니다.
중국 광저우에서 생에 첫 해외 여행을 떠나온 Liu와 그녀의 친구.
 
상기된 얼굴로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그녀들은 행복한 웃음을 짓습니다.
그러곤 여기저기 사진을 찍습니다.
에너지 드링크10병은 마신 것 같은 흥분한 얼굴로 말이죠.  
제가 첫 배낭여행을 가서 그랬던 것 처럼 말입니다.
몇날 며칠을 준비했을(아니, 어쩌면 몇달을 준비했을 지도 모를) 여행 일정표를 그녀가 보여줍니다.
 
Oh, my god!!!!!!!!!!!!!!
 
보이시나요? 일단위가 아닌 시간단위의 time schedule. 이대로 여행 하다가는 피곤해서 죽어버릴 지도 모르겠군요.

 
 
때마침, 저녁 준비를 하던 201 쥔장.
후라이팬에 올려놓은 감자는 마저 볶아야 하기에 음식이랄 수도 없는 감자볶음을 뻘쭘히 요리합니다.
그때 카메라를 들고 쪼르르 주방으로 달려오는 Liu.
 
"어머, 저녁하시나봐요? 오, 놀라워요. 이런게 한국의 삶이군요... 블라블라블라..."
 
Oh, my god!!!!!!!!!!!!!
 
지극히 평범한 제 일상이(감자 따위를 볶고 있는...) 그녀에겐 너무너무 신기한 국제문화체험이 되는 순간입니다.
 
"계속 하세요, 계속. 저는 그냥 지켜볼께요. 블라블라블라..........."
 
맞습니다. 저도 첫 해외여행을 가서는 그랬습니다.
숙소에서는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줌마는 뭘 먹나? " 시장엘 가면 "저 상인들은 하루 종일 뭘하나? " and so on.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허접하지만 제 요리를 좀 대접해 볼까요?
꼭 가봐야 할 한국 레스토랑이 있다길래(뭔줄 아십니까? 시청근처에 있는 오븐에 빠진 닭 이랍니다.)
조금만 맛보겟다네요. 오케이~
 
살짝 맛만 보라고 내민 허접한 음식들.
보기엔 저래도 접시엔 3가지의 반찬이 있었다고 자랑 한번 해볼까요? 쩝~모처럼 된장국도 끊였구만..

 젓가락 들기전에 카메라 셔터부터 누르는 Liu.

 저도 예전엔 그랬습니다. 그저 길을 알려준 사람에게도 사진찍자고 덤벼들기 일쑤였으니까요.
 
 201 쥔장이 해준 한국 맛기행(?)을 마친 후에도 여전히 사진찍느라 바쁜 Liu
- Liu taking picture of my house, Uni taking picture of Liu.

3박을 하고 싶었으나 예약이 마감되어 아쉽게 하루만 머물다 간 내 친구 Liu.
그녀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는데 왜 그렇게 함께 가고 싶던지요.
 
스물 셋인가, 넷 즈음에.. 터키 이스탄불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30대 후반의 미국여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늘 심드렁한 얼굴로 재미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
 
"서른 후반이 되니까 여행이 갈 수록 재미가 없어져.... 너도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네네. 그녀가 저에게 해 준 말입니다.
네네. 3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저는 이 말에 100%, 아니 300%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익숙해지고, 관련된 추억이 많아지면 그것이 주는 소소한 재미들에 우리는 무감각해지니까요.
 
서울의, 북촌의, 게스트하우스 201의 모든것이 낯설고, 신기하고, 재미나기만 한 Liu.
생의 첫 해외여행을 떠나왔기 때문일 테지요. 첫경험은 언제나 짜릿하고, 흥분되고, 달콤한 법이니까요.
 
 떠나기 전 툇마루에 앉아 그녀들의 마지막 사진을 찍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