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음모론의 함정에 빠진 막걸리
작성자 guest201
작성일자 2013-04-18
조회수 2548
 
 2013년 4월 18일 목요일
 
 지난 화요일. 북촌 한옥마을에서 제가 젤로 사랑하는 장소인 <중앙탕>에 다녀왔습니다.
-중앙탕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앞의 게시글을 읽어주시길...-
 
오후 4시쯤 목욕탕에 가서 신나게 때를 밀고, 개운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거리를 걷습니다.
 
'음~ 이럴 때 역쉬 바나나 우유 하나를 땡겨줘야쥐~'
 
빨대를 쪽쪽 빨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집 문앞 도착했는데...
 
이게, 이게 뭔가요????
 
우리집 우체통 위에 정체모를 막걸리 한 병이 떡하니 놓여있습니다.

 
 어라.. 분명히 나갈 때는 없었던 건데...
 
순간, 예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본 막걸리 살해사건이 제 머리 속을 스쳐갑니다.
 
한적한 시골마을, 어느 집 대문 앞에 막걸리 2병이 놓여있었답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그 집 안주인. 이게 웬떡인가 싶어 막거리 2병을 들고 밭일을 나가셨는데... 그 막걸리엔 독극물이 들어있었고, 그걸 이웃과 나눠 마신 그녀는 사망했습니다. 과연 누가 살인범인가.. 그 전모를 밝혀내는 것이 그날의 <그것이 알고 싶다>의 내용.
 
아~ 가만있자...
나를 이렇게까지 미워하는 사람이 이 동네에 있었던가?
아니, 아니.. 좁혀서 추리하자. 과학적으로다가...
이 동네에서 내가 막걸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 누구지?
음모론에 빠진 저. 말도 안되는 추리를 하느라 머리가 마구마구 아파집니다.
 
에라~ 모르겠다가.. 추리종료. 뚜껑을 따지도 않은 막걸리는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처박히고!
 
그대로 이 사건이 미제로 남았을까요?
 
NO! 그날 저녁 메일함을 정리하다 음모론의 숨겨진 실체가 바로 드러납니다.
 
<사건의 전말>
 
* 얼마전 게스트하우스 201은 Daria와 Kate란 어여쁜 친구들을 가족으로 두었답니다. (이들에 대해 보다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앞 게시판 "한류의 힘"을 읽어보시길..)
* 이 친구들.. 서울에서 총 18일을 머무는데, 9일은 북촌에서 한국의 전통 향기를, 나머지 9일은 강남이나 홍대에서 서울의 모던 라이프를 경험하고자 했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홍대에 있는 모 게스트하우스의 예약까지 해주었지요
* 9일이나 머물렀으니 얼마나 가족같았겠습니까... 마지막 날 그 친구들이 말합니다. 서울 떠나기 전날, 언니 보러 다시 들릴거에요. 그래, 그래.. 꼭 와야혀~
* 맞습니다. 그녀들이 서울을 떠나는 전날이 바로 이번 화요일이었지요. 그걸 잊었냐고요? 아니요. 잊지 않았습니다. 오후 4시까지 꼼짝않고 그녀들을 기다렸으니까요. 언제나 오려나... 그러다 오후 4시. 아~ 그 친구들이 바쁘구나.. 사실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날인데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선물도 사야하고, 미쳐 못 먹었던 음식도 먹어줘야 하고.. 먹어봤는데 죽여주게 맛있다 생각했던 음식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먹어도 봐야하고... 그래서 저는 정확히 딱 1시간.. 하루 24시간 중 딱 1시간만 목욕탕엘 다녀오자 싶었지요. 그래서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 얄궂은 운명의 장난~ 네. 그 시간에 Daria와 Kate가 저희 집에 찾아 온 거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막걸리 한 병을 들고 말이죠.
 
게스트하우스 201을 떠나는 날 찍었던 Daria와 Kate.


 
* 인터넷만 되고, 수신발신은 안되는 스마트폰을 든 그녀들.. 저에게 메일을 남깁니다. Where are you? We are in front of your house........ text me. 흑흑흑.
* 목욕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저. 당연히 답신을 못했을테지요.
* 그리고 이 친구들은 저를 기다리다 막걸리 한 병을 문앞 우체통 위에 올려놓고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아~ 뒤늦게 메일을 확인한 후 이 사실을 알고 제가 얼마나 미안했던지.. 다음날 간신히 간신히 그녀들과 연락이 닿아 전화로나마 마지막 인사를 서로 아쉽게 건네긴 했어도.. 제 맘이 돌덩이처럼 무거운 건 당연하겠죠?
 
그리고 다음 날..
 
우연히 우체통 위에  납작 엎드린 메모장 하나를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그녀들은 친절하게도 막걸리 밑에 메시지를 남겨두었는데.. 음모론에 빠진 이 쥔장은 그 메모장을 미처 챙겨보지도 못하고고 막걸리만 덜렁 들고 들어와 추리삼매경에 정신이 없었던 거죠.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고, 주의력이 없으면 몸과 머리가 모두 고생하는가 봅니다.
 
PS : 그녀들이 주고 간 막걸리.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던 막걸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이 모든 사연을 알게된 후 다시 들고 들어와 깨끗이 깨끗이 씻어 제가 나눠 마셔버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