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추억여행 2탄 - 낙원지하상가를 아시나요?
작성자 guest201
작성일자 2013-03-20
조회수 3955


   2013년 3월 20일 수요일.


   기형도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1960년에 태어나 1989, 불과 만 스물 아홉 나이에 요절한 시인. 나는 그에 대해서, 그의 시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언제나 내 상상력을 자극하곤 했다. 보수적인 1980년대의 서울, 동성애자들의 아지트와 같았던 종로의 허름한 극장(허리우드 극장)에서 뇌졸증으로, 그것도 늦은 밤에 홀로 숨을 거둔 중앙일보 기자였던 시인. 그는 왜 그 시각에, 그 장소에 있었을까???  어둡고 음울한 그의 시와 비밀스런 그의 죽음은묘하게도 닮았고, 신기하리만치 어울린다.



 

 빈집 - 詩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어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평생토록 나는 낙원상가를 지나갈 때마다 기형도를 생각했다.

때문에 낙원상가의 이미지는 언제나 어둡고, 기이하고, 음울했다.

단성사나 대한극장, 중앙극장 등 내 유년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극장들과 함께 낙원상가의 허리우드 극장도 오래 전

간판을 내렸음에도 말이다.

, 나에게 있어 낙원상가는감춰두고 두 눈을 가린 채 몰래 훔쳐보길 원하는 우울한 판타지였다.


 

 그런데 말이다,,,, 북촌한옥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이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교통 좋고, 경관 좋고, 인심 좋고, 이름마저도 사랑스러운 우리 동네 가회동.. 모든 것이 다 좋은데

~…. 대형마트가 없다. 가장 가까운마트는 청계천에, 롯데마트는 서울역에 있단다.

! 차를 가지고 가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시나?

끄~응 X 2.. 다 좋은데 우리 동네에는 주차장도 없다.

때문에 현재 나의 차는 죽전 모 아파트 주차장에서 늘어지게 독야청청 휴식 중이시다.

차야 지하철과 마을버스가 대체 한다 해도 먹고는 살아야지.. 시장보기…. ~ 진짜 NG.


 

 생존의 욕망에 불타 탐욕스런 눈으로 이웃들에게 탐문한다.


 

 ‘시장 어디서 봐요? 경동시장까지 가야 해요?”

? 경동시장은 무슨.. 낙원지하상가 가요.”


 

? 낙원지하상가요?”

거기 시장 좋아요.”


 

 이 고급 정보를 접하고도 나는 선뜻 낙원지하상가에 갈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평생 동안 내 우울함의 판타지로 작용했던 낙원상가에

콩나물 사고, 두부 사러 가기가 쉽겠냐 말이다.

하지만 생존의 욕구 앞에서 판타지는 무슨 얼어 죽을

햇살 좋은 어느 날,

드디어 나는 안국역을 지나, 운현궁을 지나 낙원상가 앞까지 걸어갔다.

걸어서 겨우 10분도 안 되는 거리. 집 앞에서 마을 버스를 타면 3분도 안 걸리는데

여기까지 오는데 장장 2달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하상가로 통하는 문 앞에서 다시 잠시 망설인다.

. 시장이 무슨 지하에 있어..라고 투덜대면서 말이다.


 하지만 막상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이런~ 신세계(新世界)가 있나



 옛날 우리 동네 앞에 있던 재래시장과 꼭 닮은 시장이 숨어있다.

온갖 바구니부터 수입물품까지, 야채부터 김치까지,국수부터 떡복기까지 없는 게 없다.

동네 앞 수퍼에서 한 단에 3,800원하는 시금치가 여기선 2,000원이다.

앗싸~ 가격마저 야무지게 착하니마다할 이유가 없는 시장.

김치가게 앞에서 서성인다. 오이 소박이, 파김치, 총각김치 다 먹고 싶은데

“3천 원 어치도 파세요?”

용기내어 묻는다. 0마트에서 오이소박이 3천원어치 달라고 하면 팔지도 않기에 말이다.


 

 “당연하죠. “

아주머니가 묵직한 검은 봉다리를 내 손에 쥐어 주신다.


 

 허름해 보여도 이곳의 가게들. 전국 단위로 도매장사를 하는 곳이 대부분이란다.

때문에 가격이 아주 착하다.


 

 시장 골목골목 기웃거리는데 눈에 들어오는 간판 하나.

평소 즐겨보던 <이영돈의 먹거리 X파일>. 그 프로그램회 나왔던 착한 식당이 이곳에 있단다.

손님에게 즉시 새 밥을 지어 주는 밥이 맛있는 식당으로 선정된 곳이라는데

~ 배가 부른 고로 나중에 다시 와야지….



 평생 내 우울한 판타지의 원천과도 같았던 낙원상가.

그렇게 그곳은 이제 내가 즐겨 가는 인심 좋은 평범한 동네 시장이 되었다.



 북촌한옥마을에 놀러 오신 김에 옛 추억의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싶으면,

대형마트에서 팔지 않는 촌스런 바구니나 쓰레빠(?)가 필요하면,

먹거리 X파일에 열광하는 시청자라면

그리고 기형도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 봐도 좋을 것 같다.


 

 단, 지하라는 단점, 김치나 시장 음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MSG의 향기를 개의치 않는다면 말이다.